*작성자 : 이지영 선임 코디네이터 | 편집자 : 이상림 코디네이터

지난해 7월 중순, 백두산 식물 탐사를 통해 고산지대의 식물상과 땅을 읽는 방법 등을 배울 수 있었다.
아름다움과 경이로움, 낯선 기후와 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생물들의 모습은 올해도 망설임 없이 백두산을 다시 찾게 만든 이유였다.
올해 탐사는 지난해보다 한 달 앞선 6월 초에 진행되었다. 고산지대 식물들의 개화기는 짧은 시기에 집중되기 때문에,
조금 더 이른 시기에 어떤 새로운 모습을 마주할 수 있을지 기대되었다.
두 번째 방문이라 마음이 한결 여유로워졌다.
지난해에는 출발 몇 주 전부터 한국에서 실시간으로 날씨를 확인하며 탐사 일정에 맞춰 준비했지만,
이번에는 백두산의 예측 불가능한 날씨를 이미 경험했기에, 날씨를 확인하지 않고 모든 가능성에 대비한 짐을 챙겼다.
역시나, 연길 시내는 한낮 기온이 30도까지 올라갔고, 백두산이 있는 이도백하는 영하 5도까지 떨어졌다. 시시각각 빠르게 변하는 백두산의 구름처럼, 하루에 모든 계절을 겪을 수 있는 곳이었다. 반팔, 레깅스, 두꺼운 바지, 패딩, 바람막이, 장화, 샌들, 우비까지 모두 준비했고, 실제로 모두 활용했다. 고도에 따라, 바람에 따라 하루에도 몇 번씩 입고 벗기를 반복했다. 이제는 그런 날씨에 적응하는 데 익숙해졌다.
무엇보다 우리는 식물을 보고 탐구한다는 목표가 있었기에, 그 고행조차도 기꺼이 즐길 수 있었다.
이번 탐사에서 인상 깊었던 답사지 몇 곳과 그곳에서 발견한 식물들을 소개하려고 한다.
멸종위기 2급의 복주머니란을 보았던 황룡시의 숲, 두 번째는 야생 여우와 뱀을 만났던 황송포 습지,
세 번째는 어두운 강이 흐르는 선봉국가삼림공원의 암하폭포 일대, 마지막으로 역시 멸종위기 2급의 노랑만병초를 보았던 백두산 소천지 일대이다.
황룡시의 숲
늘 그렇듯 연길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점심을 먹고 바로 식물 탐사 답사지로 향했다.
지난해에는 이동하는 동안 초록빛으로 빼곡히 덮여있는 광활한 옥수수밭들을 볼 수 있었는데
올해는 이제 막 싹을 틔우고 올라오기 시작해서 듬성듬성 푸릇한 모습이었다. 첫 번째 답사지 황룡시의 어느 작은 산 밑에 도착했다.
멀리 먹구름이 자욱한 산에 뿌옇게 비가 쏟아지는 모습이 보였다. 비가 몰려들기 전에 식물을 관찰하기 위해서 발걸음을 재촉했다.
작은 키의 옥수수밭을 지나 오랫동안 손길이 닿지 않은 경사지의 초원을 마주했다.
군데군데 관리되지 않은 묘비가 있었고, 이미 흐드러지게 피고 진 민들레 씨앗들이 솜털 방석을 만들고 있었다.
그 사이로 노란색 붓꽃과 분홍 할미꽃의 모습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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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분홍할미꽃(Pulsatilla dahurica) 연변 모든 지역 및 백두산 해발 1,200m의 길가 또는 건조한 초원에 자란다. 연변 지역에 자라는 할미꽃 속 식물의 80% 이상이 분홍 할미꽃이다. 연변 지역의 가는잎할미꽃과 분홍 할미꽃이 함께 자생하면서 교잡종이 만들어지면 연변 할미꽃이 된다. |

초원을 지나 저 위에 산 능선까지 올라갈 거라는 대장님의 안내를 받고 아주 가파른 경사를 올라가기 시작했다.
올라가는 와중에 북한, 중국, 몽골 등지에서 발견할 수 있는 아주 선명한 주황빛의 큰솔나리가 곳곳에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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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주머니란(Cypripedium macranthos) 연변과 백두산 고산초원에 이르는 지역에 광범위하게 분포하며, 주로 상수리나무 주변 또는 인위적으로 조성된 초원에 집중적으로 자란다. 특히 연변 지역에서는 다양한 형태와 색을 가진 변이 개체들이 나타난다. 국내 멸종위기 2급 식물이다.
출처: 국립생물자원관 한반도의 생물다양성 | | 큰솔나리(Lilium pumilum) 연변 전지역의 바위지대 및 양지바른 곳에 자란다. 솔나리라는 말은 소나무 잎처럼 바늘모양의 잎을 가진 나리라는 의미이다. 큰솔나리는 솔나리와 비슷하게 생겼지만 꽃다발이 더 큰 특징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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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첫 번째 장소의 주인공 복주머니란을 발견했다. 자생 복주머니란의 모습은 너무나 신기한 모습이었다. 꽃이 말 그대로 정말 복스러운 주머니 모양이다. 포기는 모여 있지 않고 한 덩이씩 멀리 툭 툭 떨어져서 동그랗게 자리 잡고 있었다.
함께 탐사했던 일행들 모두가 그 복스러운 자태를 카메라에 담아내려고 몰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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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님이 말씀하시기를 복주머니란은 주로 높은 산 숲속에서 발견되는데 숲에서도 어두운 곳에서는 살지 못한다고 한다.
그 말은 즉, 이곳의 녹음이 짙어질수록 개체수가 점점 줄어들 것이라는 이야기다. 예전에 비해 복주머니란의 발견이 어려워졌다고 하는데
이 식물이 사라지지 않고 번성하려면 주변의 참나무를 솎아주어 밝고 약간 건조한 환경을 만들어 줘야 한다고 한다. 관찰하는 동안
빗방울이 점점 거세지고 우리는 숲의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깊이 들어가니 더 다양한 색상의 꽃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특히 연변에서만 자생하는 노랑 복주머니란도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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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치기복주머니란(Cypripedium x ventricosum) 복주머니란과 노랑 복주머니란 사이의 자연 교잡종으로 알려진 얼치기복주머니란은 노랑복주머니란처럼 곁꽃잎이 꼬여 있다. | | 노랑복주머니란(Cypripedium calceolus L.) 개화 시기는 복주머니란보다 빠르며, 연변 내에서만 자생한다. 입술꽃잎은 노란색이고 여러 번 꼬여있는 곁꽃잎 및 꽃받침잎은 갈색으로 꽃의 크기는 복주머니란보다 약간 작다. |
황룡시의 숲에서 함께 관찰한 식물들
| 각시둥굴레 | 개벼룩 | 고사리 | 관중 | 긴잎별꽃 |
| 꽃쥐손이 | 나도냉이 | 누른종덩굴 | 노랑복주머니란 | 덩굴개별꽃 |
| 둥굴레 | 들떡쑥 | 만주붓꽃 | 물싸리풀 | 백선 |
| 복주머니란 | 분홍할미꽃 | 산개갈퀴 | 삿갓나물 | 선주름잎 |
| 숲바람꽃 | 애기우산나물 | 얼치기복주머니란 | 오이풀 | 족도리풀 |
| 좊은잎사위질빵 | 진달래 | 타래붓꽃 | 털복주머니란 | 큰솔나리 |
황송포습지
두 번째 장소는 지난해에도 방문했던 황송포 습지이다. 올해는 지난해 볼 수 없었던 여우, 뱀 등의 야생동물을 많이 발견했다.
아마도 아직 본격적으로 중국내 자국민 관광객들이 몰리는 철이 아니라 볼 수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 백두산 저지대 일대는 물이 풍부하여 크고 작은 습지들이 많이 형성되어 있다. 그중 해발 1,080m 일대의 축구장 1.5배 크기의 황송포 습지는 습지 식물이 다양할 뿐만 아니라 주변이 침엽수림대로 구성되어 있어 북방계 식물의 다양성도 매우 높다. 이도백하에서 북 백두 입구 방향으로 40km 떨어진 태고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자연습지이다.
백두산 북파 산문에서 가까워 백두산 식물 탐사를 한다면 꼭 찾아볼 만한 곳이며, 한때 관광지로 개발하기 위해 산책로를 만들어놓았다. 데크 아래에 이런 모습의 자연습지가 펼쳐진다. 황송포습지는 산성습원으로 분해되지 않은 식물체의 잔해가 켜켜이 쌓여 형성된 이탄(peatmoss)층에서 자라는 식물들로 구성된 일종의 아주 습한 초원이다.
온도에 따라 분해되는 속도에 영향을 미치게 되는데 이탄의 종류가 달라지는 것도 그 때문이다. 온도가 낮으면 낮을수록 분해 속도가 더욱 더뎌지는데, 고산에 위치한 습지의 경우가 그렇다. 고산습지에서만 사는 식물군은 저지대 습지에서 사는 식물과 명확히 구분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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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산차(Ledum palustris) 해발 700m 이상 습지 주변 또는 물기가 많은 곳에서 잘 자라며, 키는 50cm까지 자란다. 전체에서 향기가 나기 때문에 예로부터 어린잎을 말려 차로 이용하였다. 물이 잠기는 곳보다는 나무뿌리가 잡고 있어서 흙이 쓸려 내려가지 않은 곳, 거의 봉긋이 솟아오른 환경에서만 분포하고 있다.
| 함경딸기(Rubus articus L.) 백산차와 같이 습지대에 봉긋하게 솟아오른 환경에 분포한다.
| 끈끈이주걱(Drosera rotundifolia) 끈끈이주걱처럼 곤충을 사냥해서 영양 보충하는 식물을 식충식물이라 한다. 많은 종류의 식충식물이 습지에서 살기 위해 진화해 왔다. 습지가 마치 물도 풍부하고 영양도 풍부할 것처럼 느껴지지만 산성 습지이자 고산지대에 있으면, 유기물 분해 속도가 현저히 느려지기 때문에 영양 보충이 쉽지 않다. 그 환경적인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식충식물들은 사냥이라는 창의적인 방법을 모색해 냈다. | 황새풀(Eriophorum vaginatum L.)연변 및 백두산 주변의 습지에 자란다. 참황새풀 작은 황새풀에 비해 줄기 끝에 작은이삭이 1개만 달리고, 여러 개체가 조밀하게 모여 자라는 점이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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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송포 습지에서 함께 관찰한 식물들
| 가는오이풀 | 가는잎백산차 | 가문비나무 | 개통발 | 거제수나무 |
| 꿩고비 | 끈끈이주걱 | 기생꽃 | 긴잎곰취 | 대택사초 |
| 들쭉나무 | 두루미꽃 | 마가목종류 | 물황철나무 | 백산차 |
| 별사초 | 분비나무 | 분홍구슬붕이 | 산사초 | 산새풀 |
| 산토끼고사리 | 세잎솜대 | 숫잔대 | 솔잎사초 | 애기황새풀 |
| 장지채 | 조름나물 | 잎갈나무 | 애기넌출월귤 | 아광나무 |
| 왕삿갓사초 | 월귤 | 콩팥노루발 | 함경딸기 | 황새풀 |
선봉국가삼림공원 암하폭포 일대
선봉 국가 삼림공원은 1,400m 이상의 고지대에 있는 공원으로 우리는 암하폭포(暗河瀑布) (영문명:Hidden river waterfall) 일대를 탐사하였는데, 이름 그대로 숨겨진 어두운 강이 흐르는 숲이었다. 데크길 양 옆으로 왼쪽에는 물이 흐르는 수변 식생이 있었고, 오른쪽에서는 숲의 가장자리 식생들을 다양하게 볼 수 있었다.
공원 입구는 제설 작업으로 쌓아둔 눈이 마저 녹지 못한 채 있었고, 바위틈으로 이따금 아직 녹지 않은 얼음들이 보였다.
그사이에 늦은 봄을 알리는 몇몇 꽃들을 발견할 수 있었는데 특히 물이 흐르는 주변과 돌 틈사이 동선 양옆으로 동의나물꽃이 노랗게 숲을 밝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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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의나물(Caltha palustris L.) 연변 전 지역과 백두산 해발 1,700m 지점의 물기가 많은 숲속 및 습지에 자란다. 서식 환경에 따라 크기 변이가 심하다. 꽃잎은 없으며, 꽃잎으로 보이는 노란색 꽃받침은 5~7개이다. 동의나물의 작은 개체를 애기동의나물로 잘못 보기도 하는데, 애기동의나물은 꽃받침잎이 흰색으로, 꽃이 작고 암술이 2~30개로 많다. |
한참을 걷다보니 탐사 일행들이 모여들어 작은 꽃에 관심을 가진다. 1과 1속의 연복초, 연복초과 연복초속 연복초종이다.
복수초가 피고 진 후에 연이어서 핀다고 하여 연복초라 부른다고 하는데 눈이 녹은지 얼마 안 되는 것을 보니 맞는 말 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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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복초(Adoxa moschatellina) 1과 1속의 연복초, 연복초과 연복초속 연복초종이다. 복수초가 피고 진 후에 연이어 핀다고 하여 연복초라 불린다.
| 나도옥잠화(Clintonia udensis) 해발 900~1,700m 혼합수림의 습한 땅이나 이끼층이 형성된 바위 지대에서 자란다.
| 연영초(Trillium camschatcense) 연변 내 높은 산과 백두산 해발 1,800m 까지 숲속 습한 곳에 자란다. 5월 말부터 개화가 시작되어 6월 중순까지 꽃을 볼 수 있다. 울릉도에 분포하는 큰연영초는 꽃밥과 수술대의 길이가 비슷한 데 반해, 연영초 꽃밥의 길이는 수술대의 2배에 달한다. |
선봉국가삼림공원 암하폭포 일대에서 함께 관찰한 식물들
| 가문비나무 | 괭이눈 종류 | 귀룽나무 | 귀박쥐나물 | 그늘사초 |
| 긴잎별꽃 | 나도바람꽃 | 나도옥잠화 | 눈쟁이냉이 | 당마가목 종류 |
| 들바람꽃 | 두루미꽃 | 딱총나무 | 댕댕이나무 | 동의나물 |
| 둥근잎눈까치밥나무 | 바이칼바람꽃 | 바늘사초 종류 | 박새 | 벌깨덩굴 |
| 분비나무 | 분취 종류 | 부개꽃나무 | 북사초 | 붉은참반디 |
| 사스레나무/거제수나무 | 산겨릅나무 | 삿갓나물 | 생열귀나무 | 세바람꽃 |
| 선령쥐오줌풀 | 선여리초 | 솔이끼 | 시닥나무 | 수리취 종류 |
| 애기괭이밥 | 연복초 | 연영초 | 오이풀 종류 | 왕쌀새 |
| 왕죽대아재비 | 왜졸방제비꽃 | 왜지치 | 잎갈나무 | 종덩굴 종류 |
| 참새발고사리 | 터리풀 | 패랭이우산이끼 | 현호색 종류 | 큰입덩굴초롱이끼 |
| 꿩의다리 종류 | 꿩의비름 종류 | 매발톱 | 만년석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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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천지 일대의 만병초 군락
아쉽게도 이번 탐사에서는 백두산 천지를 볼 수 없었다. (섬네일의 백두산은, 비슷한 시기에 다른 팀으로 탐방했던 H활동가의 천지 사진으로 대체한다)
여행 기간 내내 천지에 눈이 내려 제설 작업으로 입장이 통제 되었기 때문이다. 작년에 봤던 천지의 모습을 기억하며 아쉬움을 뒤로 하고, 소천지로 향했다.
소천지는 백두산 천지화구의 기생 화구이며 화구호에 지하수가 고여 형성되었다. 작은 호수라 소천지라고 한다.
호수 주위에는 나무가 무성하며 호수 면적은 500㎡이며, 깊이는 20m이다. 소천지는 주변으로 울타리가 쳐져 있고, 토양은 건조한 지 산새풀이 우점하는 식생으로 단조로워져서 가볍게 지나갔다.
천지의 폭설로 인해 장백폭포와 소천지를 연결하는 원시림 또한 통제되는데 베테랑 탐사원들의 뒤를 따라가다
국내 멸종위기 2급의 노랑만병초 군락을 찾게 되었다. 노랑 만병초는 꽃잎이 추위와 비바람에 약해 쉬이 볼 수 없다고 한다.
올 때마다 관찰할 수 있는 식물들이 달라 아쉬움 속에서 또 다른 행운을 찾을 수 있으니, 백두산에 매년 오는 재미를 느낄 수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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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랑만병초(Rhododendron aureum) 백두산 해발 1,700m의 사스래나무 숲을 중심으로 5월 초순부터 개화하여 6월 중순이면 해발 2,600m까지 연한 노란색 꽃을 피운다. 눈이 늦게 녹는 계곡에서는 7월 중순까지도 꽃을 볼 수 있다. 주로 물기가 많은 곳에 군락으로 자라며, 키는 1m까지 자란다. 연한 꽃잎이 비바람과 추위에 약해 만개한 시기를 잘 맞춰야 한다. 국내 멸종위기 2급 식물이다. |
소천지에서 함께 관찰한 식물들
| 개감채 | 눈개승마 | 노랑만병초 | 물황철나무 | 박새 |
| 버드나무 종류 | 북사초 | 사스레나무 | 산새풀 | 양지꽃 |
| 좀설앵초 | 좁은잎돌꽃 | 죽대아재비 | 참새발고사리 | 투구꽃 종류 |
2025 백두산 자연 탐방기를 마치며...
올해 연길과 이도백하 지역의 개화기는 예년보다 열흘 정도 늦어졌다.
7월보다 화려한 꽃들을 많이 만나진 못했지만, 이 시기에만 볼 수 있는 귀한 식물들을 마주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운 탐사였다.
백두산의 숲, 고산습지, 초원에서 만난 식물들을 통해 나는 여전히 배우고 있다.
두 해에 걸친 탐사를 통해 단순히 식물을 관찰하는 데서 나아가, ‘서식지’를 이해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
‘생물다양성’이라는 단어가 더 이상 통계나 보존을 위한 말로만 들리지 않는다. 어떤 식물이 그 자리에 있어야만 하는 이유,
바람과 물, 곤충이 만들어내는 복잡한 연결 속에서 식물의 존재는 더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
그리고 그 깨달음은 우리가 만드는 정원에도 스며들고 있다. 이제 나는, 식물 하나를 심을 때도 그 뿌리가 닿을 땅을 먼저 떠올리게 된다. 다시 백두산을 찾게 될 그날까지, 내가 서 있는 이 땅에서 그 연결의 의미를 계속 찾아 나갈 것이다.
* 이 글의 내용 일부는 이도근 선생님의 『백두산 식물 길잡이』(궁리, 2016)를 참고하여, 작성했습니다.
*작성자 : 이지영 선임 코디네이터 | 편집자 : 이상림 코디네이터
지난해 7월 중순, 백두산 식물 탐사를 통해 고산지대의 식물상과 땅을 읽는 방법 등을 배울 수 있었다.
아름다움과 경이로움, 낯선 기후와 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생물들의 모습은 올해도 망설임 없이 백두산을 다시 찾게 만든 이유였다.
올해 탐사는 지난해보다 한 달 앞선 6월 초에 진행되었다. 고산지대 식물들의 개화기는 짧은 시기에 집중되기 때문에,
조금 더 이른 시기에 어떤 새로운 모습을 마주할 수 있을지 기대되었다.
두 번째 방문이라 마음이 한결 여유로워졌다.
지난해에는 출발 몇 주 전부터 한국에서 실시간으로 날씨를 확인하며 탐사 일정에 맞춰 준비했지만,
이번에는 백두산의 예측 불가능한 날씨를 이미 경험했기에, 날씨를 확인하지 않고 모든 가능성에 대비한 짐을 챙겼다.
역시나, 연길 시내는 한낮 기온이 30도까지 올라갔고, 백두산이 있는 이도백하는 영하 5도까지 떨어졌다. 시시각각 빠르게 변하는 백두산의 구름처럼, 하루에 모든 계절을 겪을 수 있는 곳이었다. 반팔, 레깅스, 두꺼운 바지, 패딩, 바람막이, 장화, 샌들, 우비까지 모두 준비했고, 실제로 모두 활용했다. 고도에 따라, 바람에 따라 하루에도 몇 번씩 입고 벗기를 반복했다. 이제는 그런 날씨에 적응하는 데 익숙해졌다.
무엇보다 우리는 식물을 보고 탐구한다는 목표가 있었기에, 그 고행조차도 기꺼이 즐길 수 있었다.
이번 탐사에서 인상 깊었던 답사지 몇 곳과 그곳에서 발견한 식물들을 소개하려고 한다.
멸종위기 2급의 복주머니란을 보았던 황룡시의 숲, 두 번째는 야생 여우와 뱀을 만났던 황송포 습지,
세 번째는 어두운 강이 흐르는 선봉국가삼림공원의 암하폭포 일대, 마지막으로 역시 멸종위기 2급의 노랑만병초를 보았던 백두산 소천지 일대이다.
늘 그렇듯 연길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점심을 먹고 바로 식물 탐사 답사지로 향했다.
지난해에는 이동하는 동안 초록빛으로 빼곡히 덮여있는 광활한 옥수수밭들을 볼 수 있었는데
올해는 이제 막 싹을 틔우고 올라오기 시작해서 듬성듬성 푸릇한 모습이었다. 첫 번째 답사지 황룡시의 어느 작은 산 밑에 도착했다.
멀리 먹구름이 자욱한 산에 뿌옇게 비가 쏟아지는 모습이 보였다. 비가 몰려들기 전에 식물을 관찰하기 위해서 발걸음을 재촉했다.
작은 키의 옥수수밭을 지나 오랫동안 손길이 닿지 않은 경사지의 초원을 마주했다.
군데군데 관리되지 않은 묘비가 있었고, 이미 흐드러지게 피고 진 민들레 씨앗들이 솜털 방석을 만들고 있었다.
그 사이로 노란색 붓꽃과 분홍 할미꽃의 모습을 보았다.
초원을 지나 저 위에 산 능선까지 올라갈 거라는 대장님의 안내를 받고 아주 가파른 경사를 올라가기 시작했다.
올라가는 와중에 북한, 중국, 몽골 등지에서 발견할 수 있는 아주 선명한 주황빛의 큰솔나리가 곳곳에 보였다.
연변과 백두산 고산초원에 이르는 지역에 광범위하게 분포하며, 주로 상수리나무 주변 또는 인위적으로 조성된 초원에 집중적으로 자란다. 특히 연변 지역에서는 다양한 형태와 색을 가진 변이 개체들이 나타난다. 국내 멸종위기 2급 식물이다.
출처: 국립생물자원관 한반도의 생물다양성
연변 전지역의 바위지대 및 양지바른 곳에 자란다.
솔나리라는 말은 소나무 잎처럼 바늘모양의 잎을 가진 나리라는 의미이다.
큰솔나리는 솔나리와 비슷하게 생겼지만 꽃다발이 더 큰 특징을 가지고 있다.
자생 복주머니란의 모습은 너무나 신기한 모습이었다.
꽃이 말 그대로 정말 복스러운 주머니 모양이다.
포기는 모여 있지 않고 한 덩이씩 멀리 툭 툭 떨어져서
동그랗게 자리 잡고 있었다.
함께 탐사했던 일행들 모두가 그 복스러운 자태를
카메라에 담아내려고 몰두했다.
대장님이 말씀하시기를 복주머니란은 주로 높은 산 숲속에서 발견되는데 숲에서도 어두운 곳에서는 살지 못한다고 한다.
그 말은 즉, 이곳의 녹음이 짙어질수록 개체수가 점점 줄어들 것이라는 이야기다. 예전에 비해 복주머니란의 발견이 어려워졌다고 하는데
이 식물이 사라지지 않고 번성하려면 주변의 참나무를 솎아주어 밝고 약간 건조한 환경을 만들어 줘야 한다고 한다. 관찰하는 동안
빗방울이 점점 거세지고 우리는 숲의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깊이 들어가니 더 다양한 색상의 꽃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특히 연변에서만 자생하는 노랑 복주머니란도 볼 수 있었다.
복주머니란과 노랑 복주머니란 사이의 자연 교잡종으로 알려진 얼치기복주머니란은 노랑복주머니란처럼 곁꽃잎이 꼬여 있다.
개화 시기는 복주머니란보다 빠르며, 연변 내에서만 자생한다. 입술꽃잎은 노란색이고 여러 번 꼬여있는 곁꽃잎 및 꽃받침잎은 갈색으로 꽃의 크기는 복주머니란보다 약간 작다.
아마도 아직 본격적으로 중국내 자국민 관광객들이 몰리는 철이 아니라 볼 수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다양할 뿐만 아니라 주변이 침엽수림대로 구성되어 있어
북방계 식물의 다양성도 매우 높다. 이도백하에서 북 백두 입구 방향으로
40km 떨어진 태고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자연습지이다.
백두산 북파 산문에서 가까워 백두산 식물 탐사를 한다면
꼭 찾아볼 만한 곳이며, 한때 관광지로 개발하기 위해 산책로를 만들어놓았다. 데크 아래에 이런 모습의 자연습지가 펼쳐진다. 황송포습지는 산성습원으로 분해되지 않은 식물체의 잔해가 켜켜이 쌓여 형성된 이탄(peatmoss)층에서 자라는 식물들로 구성된 일종의 아주 습한 초원이다.
온도에 따라 분해되는 속도에 영향을 미치게 되는데 이탄의 종류가 달라지는 것도 그 때문이다. 온도가 낮으면 낮을수록 분해 속도가 더욱 더뎌지는데,
고산에 위치한 습지의 경우가 그렇다. 고산습지에서만 사는 식물군은 저지대 습지에서 사는 식물과 명확히 구분된다.
해발 700m 이상 습지 주변 또는 물기가 많은 곳에서 잘 자라며, 키는 50cm까지 자란다. 전체에서 향기가 나기 때문에 예로부터 어린잎을 말려 차로 이용하였다. 물이 잠기는 곳보다는 나무뿌리가 잡고 있어서 흙이 쓸려 내려가지 않은 곳, 거의 봉긋이 솟아오른 환경에서만 분포하고 있다.
백산차와 같이 습지대에 봉긋하게 솟아오른 환경에 분포한다.
끈끈이주걱처럼 곤충을 사냥해서 영양 보충하는 식물을 식충식물이라 한다. 많은 종류의 식충식물이 습지에서 살기 위해 진화해 왔다. 습지가 마치 물도 풍부하고 영양도 풍부할 것처럼 느껴지지만 산성 습지이자 고산지대에 있으면, 유기물 분해 속도가 현저히 느려지기 때문에 영양 보충이 쉽지 않다. 그 환경적인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식충식물들은 사냥이라는 창의적인 방법을 모색해 냈다.
공원 입구는 제설 작업으로 쌓아둔 눈이 마저 녹지 못한 채 있었고, 바위틈으로 이따금 아직 녹지 않은 얼음들이 보였다.
그사이에 늦은 봄을 알리는 몇몇 꽃들을 발견할 수 있었는데 특히 물이 흐르는 주변과 돌 틈사이 동선 양옆으로 동의나물꽃이 노랗게 숲을 밝히고 있었다.
연변 전 지역과 백두산 해발 1,700m 지점의 물기가 많은 숲속 및 습지에 자란다. 서식 환경에 따라 크기 변이가 심하다. 꽃잎은 없으며,
꽃잎으로 보이는 노란색 꽃받침은 5~7개이다. 동의나물의 작은 개체를 애기동의나물로 잘못 보기도 하는데, 애기동의나물은 꽃받침잎이 흰색으로, 꽃이 작고 암술이 2~30개로 많다.
한참을 걷다보니 탐사 일행들이 모여들어 작은 꽃에 관심을 가진다. 1과 1속의 연복초, 연복초과 연복초속 연복초종이다.
복수초가 피고 진 후에 연이어서 핀다고 하여 연복초라 부른다고 하는데 눈이 녹은지 얼마 안 되는 것을 보니 맞는 말 인 것 같다.
1과 1속의 연복초, 연복초과 연복초속 연복초종이다.
복수초가 피고 진 후에 연이어 핀다고 하여 연복초라 불린다.
해발 900~1,700m 혼합수림의 습한 땅이나 이끼층이 형성된 바위 지대에서 자란다.
연변 내 높은 산과 백두산 해발 1,800m 까지 숲속 습한 곳에 자란다. 5월 말부터 개화가 시작되어 6월 중순까지 꽃을 볼 수 있다. 울릉도에 분포하는 큰연영초는 꽃밥과 수술대의 길이가 비슷한 데 반해, 연영초 꽃밥의 길이는 수술대의 2배에 달한다.
아쉽게도 이번 탐사에서는 백두산 천지를 볼 수 없었다. (섬네일의 백두산은, 비슷한 시기에 다른 팀으로 탐방했던 H활동가의 천지 사진으로 대체한다)
여행 기간 내내 천지에 눈이 내려 제설 작업으로 입장이 통제 되었기 때문이다. 작년에 봤던 천지의 모습을 기억하며 아쉬움을 뒤로 하고, 소천지로 향했다.
소천지는 백두산 천지화구의 기생 화구이며 화구호에 지하수가 고여 형성되었다. 작은 호수라 소천지라고 한다.
호수 주위에는 나무가 무성하며 호수 면적은 500㎡이며, 깊이는 20m이다. 소천지는 주변으로 울타리가 쳐져 있고, 토양은 건조한 지 산새풀이 우점하는 식생으로 단조로워져서 가볍게 지나갔다.
천지의 폭설로 인해 장백폭포와 소천지를 연결하는 원시림 또한 통제되는데 베테랑 탐사원들의 뒤를 따라가다
국내 멸종위기 2급의 노랑만병초 군락을 찾게 되었다. 노랑 만병초는 꽃잎이 추위와 비바람에 약해 쉬이 볼 수 없다고 한다.
올 때마다 관찰할 수 있는 식물들이 달라 아쉬움 속에서 또 다른 행운을 찾을 수 있으니, 백두산에 매년 오는 재미를 느낄 수 있는 듯하다.
백두산 해발 1,700m의 사스래나무 숲을 중심으로 5월 초순부터 개화하여 6월 중순이면 해발 2,600m까지 연한 노란색 꽃을 피운다.
눈이 늦게 녹는 계곡에서는 7월 중순까지도 꽃을 볼 수 있다. 주로 물기가 많은 곳에 군락으로 자라며, 키는 1m까지 자란다.
연한 꽃잎이 비바람과 추위에 약해 만개한 시기를 잘 맞춰야 한다. 국내 멸종위기 2급 식물이다.
올해 연길과 이도백하 지역의 개화기는 예년보다 열흘 정도 늦어졌다.
7월보다 화려한 꽃들을 많이 만나진 못했지만, 이 시기에만 볼 수 있는 귀한 식물들을 마주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운 탐사였다.
백두산의 숲, 고산습지, 초원에서 만난 식물들을 통해 나는 여전히 배우고 있다.
두 해에 걸친 탐사를 통해 단순히 식물을 관찰하는 데서 나아가, ‘서식지’를 이해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
‘생물다양성’이라는 단어가 더 이상 통계나 보존을 위한 말로만 들리지 않는다. 어떤 식물이 그 자리에 있어야만 하는 이유,
바람과 물, 곤충이 만들어내는 복잡한 연결 속에서 식물의 존재는 더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
그리고 그 깨달음은 우리가 만드는 정원에도 스며들고 있다. 이제 나는, 식물 하나를 심을 때도 그 뿌리가 닿을 땅을 먼저 떠올리게 된다. 다시 백두산을 찾게 될 그날까지, 내가 서 있는 이 땅에서 그 연결의 의미를 계속 찾아 나갈 것이다.
* 이 글의 내용 일부는 이도근 선생님의 『백두산 식물 길잡이』(궁리, 2016)를 참고하여, 작성했습니다.